1. 아직 완전히 무르익은 대안은 아니지만 장강명 작가의 논지가 좋았던 이유가 있다. 장강명 작가는 문단이나 작가 지망생을 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단이 어떻게 독자들과 함께 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측면은 나머지 작가들에게서 유독 부족한 부분이기도 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그 시선에 동의하고 옳다고 여긴다. 문단의 구조를 이야기하면서 독자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곤란하다. 


2. 문학동네 가을호 좌담을 읽고 '잘 된 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가을호에 나온 것처럼 원래 잘 만들어진 작품을 비평하기가 훨씬 어렵다. 못 만들어진 것의 어떤 부분이 못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아주 쉬운 일이다. 신형철은 아마도 여러번, 잘 만들어진 작품에만 집중하며 비평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3. "모리악이 쓴 <테레즈 데케이루>라는 소설을 자주 떠올리곤 합니다. 이 소설에는 남편을 독살하려는 테레즈라는 여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남편을 독살하려 했는가? 사랑하지 않아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미워해서? 그것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테레즈는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편을 독살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편의 눈동자 속에서 불안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거야 말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군들도 여하튼 일본의 권력 구조, 체제의 눈 속에서 불안을 보고 싶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사실 저도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과는 다른 방향에서 (미시마 유키오·기무라 오사무 외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김항 옮김, 새물결, 2006, 19~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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