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에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선배 한 분이 '기자의 글쓰기'에 대하여 이렇게 충고했다. 

 "기자는 시장을 대하는 태도와 시청 수위를 대하는 태도가 같아야 한다. 기사문은 짧고, 쉽고, 정확해야 한다."

 여기에 나는 하나를 덧붙인다. 

 "글은 잘 쓰기보다는 많이 빨리 써야 한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홈런을 치려면 스윙을 많이 해야 하는 것과 같다." 


글이 흐르다가 지류로 빠지기도 하지만 항상 본류로 돌아와 주제를 강조하는 구조이다. 잘 써진 글은 잘 설계된 건축물같이 미적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 


'억울하다는 유언을 남긴 오 씨가 교수대의 밧줄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는 동안 집행 참여자들은 사형장 건물 바깥 느티나무 밑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했다. 

 서울구치소 보안과장이 참여 검사에게 물었다. 
 "영감님, 오판 아닙니까?" 

 검사는 교무계장에게 "억울하다고 죽는 사형수가 많습니까?" 하고 물었다. 

 계장은 "아니오, 나로선 처음입니다"고 했다. 

 보안과장이 "상담할 때도 그랬어?"하고 다시 물었다. 

 계장은 "그걸 모르셨어요? 오휘웅이는 안 죽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검사는 말없이 땅만 내려다보더라고 한다. 

이 순간엔 그 어떤 인간도 밧줄을 끊을 수 없다. 사형을 선고한 판사조차도. 제도가 구르면 멈출 수 없는 시간대가 있는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세 치 혀와 펜으로 서로 욕하고 싸우면서 신도들 열 명 중 아홉은 알아 듣지 못할 설교를 늘어놓는 게 그들이야. 신학자들은 스스로 복음에 감명한 후에 다른 이들도 자신들이 받은 감명을 함께 겪을 수 있게 이끌어줘야 하지. 하지만 그러기는 커녕 복음서들은 영감을 받은 자들에 의해 쓰인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담고 있다는 빈약한 주장이나 뒷받침하려고 끝없이 자료를 모아다 끼워맞추고 있어. 하지만 그것도 그들의 구멍 난 신앙을 때우려는 주먹구구식 응급 조치에 지나지 않아. 단 한 번도 경이로운 영감에 휩싸여본 적이 없는 그들이, 어떻게 영감을 받은 사도들이 복음서를 썼다는 걸 알 수 있지? 

 모르긴 해도 아마 그래서 영감이란 걸 받을 자격을 교회의 성직자들에게까지 넓히고, 종교 회의에서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의 권리를 귀속시켜버린 거겠지. 그들에게 감히 묻고 싶어. 대체 오십 명의 주교들 중에서 스물여섯 명은 영감을 받았고 나머지 스물네 명은 그렇지 않다는 걸 어떻게 판단할 수 있지? 그러면 마지 못해 그들은 이런 변명을 늘어놓겠지. 교회의 수장들은 성직을 받을 때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영감이 존재하며, 결코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다고 말이야. 그러니 성직자의 무오류성, 우월성, 영감에 비하면 그 어떤 종교적 신념이나 헌신, 신앙적인 시각은 하찮게 여겨지는 거야. 하지만 아무리 이런 변명을 널어놓아도 영락없이 첫 째 질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A가 영감을 받은 사실을 어떻게 B가 알 수 있을까? B가 A만큼, 혹은 A보다 영감을 더 받지 않았는데도 그걸 알 수 있을까? A가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자신이 영감을 받은 것을 아는 것보다 알기 어려운 문제일 텐데 말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자세히는 보지 못했어. 나는 가끔 이런 의문을 가졌어. 눈속임이 아닌 진짜 사랑이라는 증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서 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봤어. 누군가 사랑을 하는지 안하는지는 오직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물론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사랑을 믿는 한도 내에서만 다른 이의 사랑을 믿을 수 있겠지. 

 사랑의 성품이 이렇듯, 성령의 성품 또한 다르지 않을 거야. 성령이 임하는 사람들은 거센 바람도 하늘에서 들리는 쏴 하는 메시지로 들릴 테고, 혓바닥에 불이라도 붙은 듯 자기도 모르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오겠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문학동네, 2015)


나는 ‘하찮은 이야기 따위는 필요 없소 우리의 위대한 승리에 대해 쓰시오...’라는 추신이 덧붙여진 편지를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나에겐 바로 이 ‘하찮은 것’들이 중요하다. 이 하찮은 것들이야말로 삶의 온기이자 빛이므로 긴 머리 대신 뭉툭하게 잘려나간 짧은 앞머리, 뜨거운 죽냄비와 국그릇들이 돌아오지 않는 주인들을 기다리고 전투에 나갔다 무사히 돌아오는 사람은 백 명 중에 일곱 명 정도였다는 이야기, 혹은 전쟁터에 다녀온 후로는 줄줄이 걸린 붉은 살점의 고기를 볼 수가 없어서 시장에도 못 다니고, 심지어 붉은색이라면 사라사 천도 쳐다볼 수 없었다는 사연들 (32쪽)


- 그런데도 당신은 전쟁의 추악한 면만 보여주고 있소. 냄새나는 속옷만 보여줬단 말이오. 우리의 승리가 당신한테는 무섭고 끔찍한 것에 불과한 거요?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 진실들

- 당신은 삶 속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거리에 있다고 말이오. 당신이 말하는 진실은 천박해요. 지나치게 세속적이오. 아니, 진실은 우리가 꿈꾸는 바로 그것이오. 우리가 되고자 하는 바로 그것! (출판 검열관과 나눈 대화에서, 48쪽)


전쟁터에서는, 말하자면,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이어야 해. 그래야만 하지 ...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말이야. 만약 사람답게만 굴잖아? 그러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 단번에 머리통이 날아가버리지! 전쟁터에서는 뭔가 하나 정도는 자신에 대한 기억을 붙잡을 필요가 있어. 그래, 뭔가 하나쯤은 ... 아직은 자신이 사람다울 때, 그 사람다웠던 모습 중 하나는 기억해둬야 해. (127쪽)


친구 한 명이 있었소. 지금 내 기억으로는 꽤 예쁜 아가씨가 그 친구를 사랑했었소. 간호병이었죠. 하지만 친구는 그 아가씨하고 결혼하지 않았어요. 제대하자 다른 여자, 더 예쁜 아가씨를 만나 결혼했지. 하지만 그 친구, 자기 아내랑 행복하지 못해요. 이제야 그 아가씨, 전쟁 때 연인을 떠올리고는 한다오. 서로 좋은 친구가 됐을 텐데. 전선에서 돌아오자 친구는 아가씨를 버렸소. 4년 동안 닳아빠진 군화에 남자 솜옷을 입고 다닌 그 아가씨가 지겨웠던 거요. 우리는 전쟁을 잊으려고 애썼소. 그리고 그때 사랑했던 여인들도 함께 잊은 거요. (170쪽)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 불신에, 보통의 삶을 소위 이상이라는 것과 슬쩍 바꿔치기하려는 이 욕망에 나는 매번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온기를 차디찬 광채와 맞바꾸려는 욕망에. (188쪽)


뭔가 여자다운 일이 하고 싶었어. 우린 늘 여자들만의 일에 목이 말랐지. 정말 사무치도록 여자다운 일이 하고 싶었어. 그래서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바늘을 손에 쥐고 뭐든 만들었어. (196쪽)


녹음기는 사람의 말을 녹음하고 어조도 그대로 담아낸다. 짧은 침묵, 울음소리, 망연자실해하는 소리까지도. 나는 이야기란 게 원래 시간이 지나 글로 옮겨질 때보다 말로 뱉어질 때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말할 때 그 사람의 눈빛과 팔의 움직임을 ‘녹음하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깝다. 대화하는 동안 드러나는 그들의 삶, 즉 그들 본래의 삶과 그들 각자의 삶을, 그들의 ‘텍스트들’을 녹음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196쪽)


우린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지만 ... 전쟁이 우리를 쫓아와 우리와 나란히 가고 있어요 ... 우리 딸내미들 중에는 불행하게 사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건 전쟁터에 나가 싸운 엄마들이 자신이 살았던 전선의 방식으로 딸들을 키웠기 때문이오. 아빠들도 마찬가지고. 전선의 윤리로 말이오. (199쪽)


‘당신이 온 거야? 당신이야?’ 나는 그 사람 손을 잡고 몸을 굽혔어 ... ‘당신이 올 줄 알았어 ...’ 그 사람이 뭔가 더 속삭였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더라고. (중략) 그 사람 위로 몸을 굽히고 입을 맞췄어. 그 사람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지. 눈물이 붕대를 타고 흘러내렸어. 그리고 그것으로 끝. 그 사람은 숨을 거뒀어. (241쪽)


‘어떻게 사람이 돼가지고 말들이 보는 데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싶었지. 동물이 있는 데서. 말들이 다 보았을 텐데...’(248쪽)


- 지휘관이 막사로 들어왔어.

- ‘남자 머리’처럼 이발해.

- 하지만 아가씨인데요.

- 아니지. 아가씨가 아니라 군인이지. 아가씨는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하면 돼. (304쪽)


마지막까지 나를 두렵게 한 건 딱 하나였어. 흉측한 꼴로 죽어 누워 있는 것. 그건 여자이기에 갖는 공포였지 ... 제발 포탄에 맞아 갈가리 찢기는 일만 없기를 바랐어 ... 그게 어떤 건지 나는 알거든 ... 내가 그 시신들을 수습했으니까. (348쪽)


그 아이들은 왜 집이 아닌 거리에서 입을 맞췄을까? 왜? 그런 식으로 죽고 싶었던 걸까 ... 아이들은 언젠가 게토에서 죽을 운명이란 걸 알았던 거야. 그래서 다른 식으로 죽고 싶었던 거고. 그건 사랑이었어.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 다른 이유는 있을 수 없어 ... 사랑밖엔.

당신에게 이야기하다보니 그 일이 아름답게 들리기도 하네. 하지만 실제로는? 실제로는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지 ... 그래 ... 아니면 뭐? 지금 생각해보면 ... 그 아이들은 맞서 싸웠던 거야 ... 아름답게 죽고 싶었던 거지. 나는 그게 그 아이들의 선택이었다고 확신해 (368쪽)


나는 벌을 받은 거야 ... 무슨 죄냐고? 아마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 아닐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 나이가 들어서는 부쩍 더 그래 ...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아침에 일어나면 무릎을 꿇고 창밖을 바라봐. 그리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지 ... 내가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해 ... 남편에 대한 원망은 없어. 오래전에 용서했거든. 딸아이를 낳고 누워 있는데 ... 남편이 우리 모녀를 보더니 ... 잠깐 있다 가버렸어. ‘정상인 여자라면 과연 전쟁터에 나갈 수 있을까? 총쏘기를 배우고? 그래서 당신이 정상아를 낳을 수 없는 거다’라고 나를 비난하며 가버렸지. 나는 남편을 위해서도 기도해 ...

어쩌면 남편 말이 맞는지도 모르잖아? 그런 생각이 들어 ... 다 내 죄라고. 나는 조국을 세상 무엇보다 사랑했어. 정말 사랑했지. (431쪽)


마을에서 남편의 사망통지서를 받지 않은 여자가 없었어. 나만 ‘행방불명’ 통지서였지. 파란색 잉크로 행방불명이라고 쓰여 있더군. 처음 10년은 날마다 남편을 기다렸어. 사실 지금도 기다리지만.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어떻게 희망을 버려 (461쪽)


이게 다 역사를 위한 거지? 당신이 지금 이 대화를 녹음하는 거 ... 이 대화가 역사를 위한 거라면,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 ‘만약 여자로 살지 않았다면 전쟁터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라고. 나는 한번도 남자가 부러운 적이 없었어. (중략) 남자들은 성능 좋은 권총 앞에서 넋을 잃더라고. 나는 그게 정말 이해가 안 됐지. 나는 여자니까.

왜 혼자 남았냐고? 글쎄, 결혼할 남자들은 많았어. 충분했지 ... 하지만 지금은 보다시피 혼자야 ... 즐겁게 살려고 애를 쓰지. 내 친구들은 모두 젊은 애들이야. 나는 젊음이 좋거든. 나는 전쟁보다 늙는 게 더 무서워. 당신이 너무 늦게 왔어 ... 나는 요즘 전쟁이 아니라 늙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거든 ...

지금 녹음되고 있는 거지? 역사를 위해, 그렇지? (534쪽)


스탈린그라드전투는 정말 무시무시한 전투였어. 그렇게 끔찍하고 처참한 전투가 또 있을까. ‘심장 하나는 증오를 위해 있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위해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사람은 심장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나는 늘 어떻게 하면 내 심장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