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출판사
민음사 | 1999-03-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독일의 대문호인 저자가 25세 되던 해 봄, 이미 약혼자가 있는...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괴테는 베르테르의 슬픔을 시작하기 전 독자들에게 이렇게 밝힌다.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위안을 얻으십시오. 그대가 운명 때문에 또는 그대 자신의 잘못으로 절친한 친구를 찾지 못한다면 부디 이 조그마한 책을 그대의 친구로 삼아주십시오." 나는 위의 말이 괴테가 이 책을 통해 진정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임을 그리고 스물다섯의 샤로테를 사랑하지만 이미 결혼한 그녀를 위해 도주를 해야했던 자기 자신에게 하고싶은 말임을 알았다. 소설 속 로테는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으로 미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베르테르의 학식에 걸맞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로테는 자신을 향한 베르테르의 병적인 사랑과, 사랑이 아닌 친구로 그의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그녀의 친구들 중 누군가가 베르테르와 이어졌으면 하지만 베르테르의 학식에 알맞은 베필을 찾지 못해 절망한다) 괴테는 그저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예전에 사랑하던 샤로테를 박제해버리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자신이 한 때 사랑했던 연인을 다가설 수 없을만큼 높은 위치에 올려두고 베르테르와 로테만이 영혼적 교감을 나눌 수 있으며 오로지 그녀만이 베르테르가 죽어서도 책 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말이다. 괴테가 만일 이를 생각했다면 그는 적어도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베르테르와 로테 그리고 괴테와 샤로테의 이야기는 2012년까지 회자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베르테르를 다시 읽기 시작한 이유는 '정말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마음이 없었던 걸까' 하는 천진난만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얼마나 주관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전해지는 게 올바른 방법인지. 또 로테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이 단계는 친구 빌헬름에게 보내는 베르테르의 편지가 쌓일수록 점점 깊어진다. 


 그의 단계는 실제로 이러하다. 그녀와 춤을 추고 난 이후 베르테르는 빌헬름에게 이렇게 털어놓는다. "빌헬름,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아가씨는 다른 어떤 남자와도 왈츠를 못 추게 해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그 때문에 설혹 내가 파멸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네는 나를 이해하겠지." 


 "때때로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이다지도 외곬으로 그녀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지, 또 사랑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녀 외에는 아무 것도, 아무도 모르고, 또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그는 이제 그녀가 자신을 굳게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베르테르의 착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로테의 행동이 악마적 자의든 친절한 타의든 그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면서 (초반까지 로테의 행동은 분명 친절한 타의였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중반 이후 로테의 행동에는 분명 악마적인 물고기 관리가 있었음을 나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베르테르는 점점 미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질질한 애정에 못이겨 상대자를 쏘아버린 남성을 변호할 때조차 그는 ("그대는 구원받을 수 없다. 불쌍한 인간이여! 우리가 살아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일견 자신의 운명을 느끼는 듯 했으며 마침내 자기 파멸에 가까운 단계에 이르고 만다. ("알베르트, 당신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나는 로테의 마음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오. 그 뿐만 아니라 나는 로테의 마음 속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소.") 괴테가 과연 어디까지 젊은 베르테르를 비참하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베르테르가 총기 자살로 사망한다는 결말을 떠올렸다. '아 그리고보니 베르테르가 죽을 때까지 괴테를 그를 궁지에 몰아넣겠구나' 그리고 실제로 괴테는 동시대의 젊은이들도 궁지에 몰아넣는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이 나는 베르테르가 젊은 남성을 변호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국판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그가 악인으로 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감정적 동요를 느끼면서 오히려 선인(善人)을 그의 출세길을 막는 사람쯤으로 생각해버리고 말았다는 대서사를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악을 행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당위성 그리고 깊은 불행에 취한 나머지 이를 정당하다고 여기고 마는. 베르테르는 불행히도 이를 통해 정신의 달팽이관이 고장났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학식이 높고 사려 깊던 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여기서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 (나같은) 독자라면 그 불행에 취해 베르테르와 재판을 받은 피고인의 처지에 동의하고마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해버린다. 로테의 남편인 알베르트는 오히려 이 쪽의 처지보다는 총살당한 여성의 처지를 변호한다. 베르테르는 여기서 엘베르트를 비난했지만 이쪽이 훨씬 이성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정작 민음사에서 나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평론을 보면 괴테는 '여성들로부터 최대의 것을 섭취한 다음에 자신의 보다 높은 비약을 위해 매번 그 여성들을 버렸다'고 나와있다. 그는 샤로테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도주했지만 그 이전과 이후 수차례에 걸쳐 그를 향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여성들 그리고 자기를 안아달라고 말하는 여성들을 버리고 떠난다. 74살의 괴테가 19살의 울리케와 춤을 추면서 (괴테 자신이) 새로운 사랑을 경험했다는 구절에서 나는 사랑의 아름다움보다 그가 향했던, 그를 향했던 여자들이 생각났다. 그의 희열보다 여성들의 분노가 적어도 더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더 큰 슬픔은 그를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다는 데 있었다. 그는 적어도 매번 새로운 여성을 만날 때마다 온 힘을 다해 그의 사랑을 바치는. 마치 헌화가와도 같은 사랑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수차례의 도주가 그로 하여금 말년에 《파우스트》같은 대작을 낳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이 괴테가 친구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14주만에 완성했다는 점, 그리고 탈고니 뭐니 자신의 감정만을 쏟아부어 25살에 끝마쳤다는 점, 그리고 이성적인 부분보다 병적으로 고뇌하는 부분이 더 많다는 점에서는 그 완성도를 떨어트릴지도 모른다. 또한 서간체로 이루어진 전반적인 구성에 베르테르가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메꾸기 위한 편집자의 글은 그다지 부드럽지도 않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베르테르의 터져 고름이 흘러나오는 슬픔을 지나치다고 비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분명 흘러넘치는 과함은 이 책의 단점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흘러넘치는 슬픔이 아니었던들 어찌 수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가 입었던 푸른색의 연미복을 따라 입었을 것이며 '베르테르 효과'를 낳게 만들었을 것인가. 생각하면. 스물 다섯된 괴테의 내밀한 자기 고백이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이유일 것이다. 



신고



모래의 여자

저자
아베 코보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1-1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요미우리 문학상',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수상작. 곤충...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감방에서 구금되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실감하게 하는 것은 철창도 아니고 벽도 아니고 그 조그만 쪽창이라고 한다.' 아마 쪽창에서는 하늘이 보이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처한 상황 자체만 본다면 그곳이 감방인지 천국인지 혹은 지옥인지 알지 못한다. <모래의 여자>는 쪽창을 비뚤게 바라본 한 남자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어느날 모래 구덩이에 빠져 모래에 휩쓸리지 않게 매일같이 모래를 퍼내야하는 상황에 처하면 어떨까?  물은 시간에 맞춰 제한적으로 배급된다. 이 모래 구덩이에 빠진 남자는 점점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가 원하는 결말을 얻을 수 없다. 자고 일어나 하나의 의식처럼 입 안에 진득하게 쌓인 모래를 침과 함께 닦아낸다. 


"그는 이번 휴가에 대해 몹시 은밀한 태도를 취했고 동료중 누구에게도 일부러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도 그저 말을 안한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수수께끼처럼 보이려고 노력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잿빛 일상에 피부색까지 물들어가고 있는 그들을 약올리기에는 더없이 유효한 방법이었다. 회색 종족은 자기 이외의 인간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회색 이외의 색을 지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자기 혐오에 빠진다." 


 교사이자 곤충 채집가인 그는 홀연히 휴가를 내고 떠난다. 동료들에게 그가 향할 곳을 알려주는 수고는 필요 없었다. 그의 홀연함이 동료들로 하여금 절망을 낳는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 하나만 발견하면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도 곤충도감에 기록되어 거의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 비록 곤충이라는 형태를 빌려서이기는 하나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면 노력한 보람도 있는 셈이다."  


(중략)


"너무나 불공평하다. 사형수도 죽으면 훗날 기록에 남는다. 아무리 울부짖어도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니 옳지 않다!" 


 곤충을 채집하는 것도 이를 위해 떠나는 것도 철저하게 객체화되어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는 스스로가 좋아해서가 아닌 무언가를 '위해' 행동한다. 이것이 그가 어떤 인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기록에 집착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또한 그것이 될 수 있다면 그가 죽어서도 계속되길 바란다. 이 생각은 그를 결말까지 이끌어내는 주요 동력원이다. 당연하게도 누구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위해 살아가지만 이는 그를 유독 잔인하게 이끌고 지배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쪽이 되고 싶다는 자기를 꼭두각시와 구별하고 싶은 에고이즘에 지나지 않죠. 여자들이 화장을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어요." 


(중략)


 "대부분의 여자는 사타구니 한 번 벌리는 데도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가 아니면 자기의 가치를 상대방이 인정하지 못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답답할 정도로 천진한 착각이야말로 실은 여자들을 정신적 강간의 일방적인 피해자로 만드는 원인이다. 우선 성병은 멜로드라마와 정반대다. 멜로드라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절망적인 병이다." 


 그는 결국 모래 구덩이에서 나가지 않는다. 그가 이 모래 구덩이를 처음 벗어나려고 시도했던 방법은 꾀병이었다. 일부러 아픈 척을 해 그를 돌봐주던 여자를 착취하고 그녀로 하여금 모래를 퍼내는 일을 점점 더 힘들게 만들면서 그를 지레 포기하게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나고 만다. 여자를 협박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다시 모래 위로 데려가게 만드는 방법, 잠든 틈을 타 탈출하는 방법, 공개적인 장소에서 여자를 겁박해 사람들에게 애걸하는 방법까지. 그는 치밀한 탈출 계획을 세워 다시 자기가 살았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한편 척박한 마을에서 신문지를 구하는 열정을 보여 (정확히는 여자로 하여금 그 열정을 강요해) 자신을 찾는 신문 기사가 존재하길 기대한다. 그가 갈구하던 물을 모래 속에서 끌어올리는 유수 장치를 발명한 이후에 그는 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도망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된 이후에도 '나중에 할 수 있으니까' 라며 그만두고 만다. 결국 그는 모래 구덩이에 계속 빠지면서 이곳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비일상이 일상이 되는 순간이다. 그는 무엇이 자신을 옭매는지도 모른채 여기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나쁜 결말로 여기지 않는다. 


 결국 비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끔찍하다고 생각한 일상에서 벗어나 이 고장에 오자마자 그는 그를 애처로이 바라보고 있는 여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지내던 곳이 그래도 좀 더 낫게 여겨진다고. 여기서 벗어나야겠다고. 그의 극한은 결국 일상으로의 귀환이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느껴지지만. 절대적인 시각에서 사막이 그가 선택한 곳이라면 이미 이를 그른 것이라 규정하는 태도는 무의미할 수 밖에 없다. 


신고
  1. 컬처버스 2014.02.11 15:44 신고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 공연되어 정보 공유합니다. 소설을 읽으신 분들께는 더욱 흥미로운 연극이 될 것 같아 댓글 남겨요.

    공연정보는 한국공연예술센터 홈페이지 (www.hanpac.or.kr)에서 "모래의 여자"를 검색하시면 확인가능합니다.



    연극 <모래의 여자>
    2014.02.18-2014.02.23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전석 2만원
    예매 바로가기 http://www.hanpac.or.kr/hanpac/program.do?tran=play_info_view&playNo=14012915412124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