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01


 1. 살바도르 달리에 빙의해서 오렌지나무 가로수길을 스쳐 자전거를 타고 코르도바를 둘렀다. 갓 익은 오렌지향이 닿자 안달루시아를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과분하게 행복하다. 


이 달지 않고 담백한 오렌지향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언젠가 한국에서 맡았던 모과향이었던가. 모과도 이런 향을 내뿜었던가. 


2. 코르도바의 화가 훌리오 로메로 - 자기가 그리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화가의 그림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의 그림이 좋았던 이유는 살아있는 것이 풍기는 원시적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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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19. 4월 말. 세비야의 온도계는 4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쏟아져내리는 태양열과 이를 반격해보겠다는 지열 사이에 서있는 사람의 위태로움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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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어 발음이 영어와 많이 다른 것도 아니고 알파벳도 비슷한데다가 읽는 것도 비슷해 스페인어를 영어 발음 그대로 읽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비야는 영어식으로 읽었을 때 가장 스페인어와 차이가 많이 나는 지명 중 하나인 듯 싶다. '세빌라' 혹은 '세빌리아' 부터 다양하게 읽힌다. 스페인어에서는 ll 이 영어 y 로 발음되니 세비야[seviya] 정도로 읽을 수 있겠다. 


 그래서 (뒤늦게 올리는) 오늘의 도시는 '세비야'이다. 4월 말에 거리 온도가 40도를 찍는 그 전설적인 도시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다. 세비야는 정말 몹시 더웠던 것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은 완벽했다. 1) 4월말 세비야에서는 'Peria' 라는 축제를 연다. 구시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어디서 축제를 하는지 잘 알아보고 가는 게 좋다. 축제의 주체는 세비야 마을 사람들이다. 그들은 천막을 빌려서 축제를 준비한다. 하지만 역시 느긋한 안달루시아 사람들 답게 축제는 뒤늦은 오후 2시쯤부터 시작한다고 하니 아침 일찍부터 놀겠다고 찾아가 괜한 허탕 치지 말자. 천막 안에는 초대권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소규모로 친인척들과 지인들에게 대접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천막이 세워졌다고) 스페인 특히 안달루시아 사람들만의 가공할만한 친화력이라면 어느덧 두 세개 천막을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계속 붓고 마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천막 위에 어떤 집인지 찾아갈 수 있도록 주소랑 천막 고유의 그림까지 있으니 제법 규모있고 구색은 갖춰진 축제다. 


2) 세비야에 가면 김태희가 CF를 촬영했다던 스페인 광장이 있다. 건축물로도 상징적으로도 완벽하게 아름다운 이 광장에는 흰 기둥 사이사이마다 스페인의 각 도시들을 상징하는 문양과 그림이 그려져있다. 물론 마드리드도 있다. 





3) 하지만 역시 안달루시아의 매력은 오렌지 가로수 나무에 있음을.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만 맡을 수 있는 청량감 가득한 오렌지향은 아마 쉽게 잊혀지지 않으리라. 





 4) 불행히도 내가 세비야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호스텔 로비였다. 호스텔 규모가 엄청난데 페리아 기간에는 호스텔 값을 비싸게 받기 때문에 20인용 침실에서 잘 수 밖에 없었다. 20인용 침실이라니 규모도 불편함도 상상을 초월한다. 대신 널찍한 호스텔 로비를 24시간 사용할 수 있으니 하릴없이 천장에서 돌아가는 환풍기를 벗삼아 꾸벅꾸벅 시에스타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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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동 2013.08.22 22:58 신고

    김태희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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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관통하는 가장 거대한 거리인 Gran Via de les corts catalanes 에서 트램에 치여 죽는다. 그리고 평생을 바쳤던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안에 묻힌다. 바르셀로나 자전거 투어의 최종 목적지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였는데 설명을 위해 성당 앞에 멈춰선 가이드에게 동행인이 묻는다. '가우디에게 가족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가이드가 답한다. '아니요. 사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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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마드리드에는 4개월을 있었다. 아니 4개월간 있었던 방학을 모두 긁어모아 다른 지방으로 향했으니 3개월 정도라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한국에 돌아와 막 짐을 풀렀고 잠들기를 반복하다가도 후덥지근한 꽃바람이 코를 자극하자 이제야 한국에 왔노라 여기는 것이다. 마드리드에서는 이런 종류의 더운 바람이 불어서는 안 됐다. 한국은 여전히 무시무시하게 무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정신만큼은 여전히 무사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는 그저 모든 일들이 꿈인양 여겨졌다. 한국을 잠시라도 떠나야만겠다고 마음 먹었던 순간부터 도착하던 순간까지 아득했다. 그러자 엄마가. 삶이 다 꿈이지. 라고 대답했다. 그래 만약 꿈이라도 이런 꿈이라면 얼마든지 꿀 수 있겠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꿈이라는 항목은 추상성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이런 식인 거다. 세비야에서는 39도를 가리킨 전광판을 코르도바에서는 자전거를 힘차게 밟던 내 발을 단편적이고 시각적인 찰나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한편 그라나다에서는 아랍풍 향기가 마드리드는 끊임없이 파이프를 타고 올라오던 담배향이라는 후각적 느낌이 스친다. 긴 여행에 남기기를 의도적으로-그토록 원했던 것들은 온데간데 없다. 


 우연히 다이어리를 들춰보다가 신년 소망 적는 란을 발견했다. '욕망에 충실한 한 해가 되기를' 이라고 쓴 전생의 나를 발견하고 한참을 웃었다. 불교에서는 지나간 시간을 전생 그리고 현재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내생이라고 부른다. 4개월은 짐을 풀러서 다시 싸고 떠나는 것의 반복이었다. 여행이라는 지극히 비일상적 보통 명사가 일상이 된지 꽤 오래되었다. 이제 일상이 비일상이 될 차례이다. 


 정말 많이도. 돌아왔다. 긴 시간들이었다. 삶은 언제나 실전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견뎌내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여겼고 그렇기 때문에 주저없이 선택했던 마드리드는 오히려 더 멀리 돌아갔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국에 돌아오면 삶을 견디는 일로 여기지 말자고 그때는 앞만 보고 달려내자고 다짐했다. 원대한 계획과는 반대로 나는 앞만 보고 달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어떤 장소에 도달할지라도) 삶을 희미하게 살아냈고 앞으로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 정도를 깨달았다고 말할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라는 정현종 시인의 짧은 싯구는 나의 스페인의 처음과 끝이었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함의한다. 고 나는 해석했다. 첫째는 소통에 대한 의지이며 둘째는 고립에 대한 의지이다. 문학 교과서에서는 주로 이 시의 당위적 해석으로 '현대인의 불통'을 적용시킨다. 소통에 대한 의지라면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이 사람들간에 연결고리가 되어 어떤 종류의 다른 소통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겠고 고립에 대한 의지라면 사람들 사이에 있는 '외딴 섬'에 고립되고 싶은 시적 화자의 심적 반영이겠다. 소통과 고립은 실은 반대말인 것 같지만 동의어일 수도 있음을 부디. 알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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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르셀로나에는 일주일을 있었다. 메트로 Universitat 근처에 있는 Urbany BCN GO! 바르셀로나 얼바니 고! 호스텔 www.urbanyhostels.com 의 장기투숙객이었다. 6월이 시작되려는 5월말이었는데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6인실을 혼자 사용할 때도 있었으니. 청결하고 값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역시 호스텔 규모가 크다보니 제휴할인이 많아 바르셀로나 2층 버스도 자전거 투어도 할인해서 탈 수 있었다. 친절함은 두 번 말해도 입 아프다. 


 3. 호스텔을 선택할 때 몇가지 조건이 있는데 '동양인 + 여자 + 혼자'는 스페인에서 가장 위험한 조합이기에 안전을 가장 우선시한다. 물론 안전이라는 건 확률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밤 늦게 도착하는 곳이 호스텔 혹은 호텔 숙소인만큼 1) 사람들 많은 곳, 2) 큰 길가. 같은 기준을 나름대로 세우고 잡는 것도 좋은 방법. 스스로를 안심시킬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놓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에 잡았던 호스텔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대로인 Gran Via de les Corts Catalanes 이고 중심 광장인 까탈루냐 광장으로 바로 갈 수 있지만 호스텔로 향하는 길이 상업 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밤에는 상당히 어두웠다. 고딕 지구등 좁은 골목은 밤중에는 매우 위험하다고 하니 주의하는 게 좋다. 


 3. 바르셀로나는 유럽 여행 이후 다시 가고 싶은 도시. 예술가들이 살아보고 싶은 도시에서 매년 1위를 다툰다고 한다. 역시나 듣던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매력적이다. 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지중해' 까탈루냐의 '역사'. 빠에야 등 스페인 대표 해산물 음식의 '맛'. 가우디의 '예술'과 '건축' 이층버스부터 자전거의 도시 그리고 기차. 산과 바다 위에서 운행하는 곤돌라 등 다양한 '탈 것' 만국박람회장으로 쓰여 자연과 예술을 겸비한 '공원'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한 도시에 구겨 넣어도 모자랄듯하게 보아야할 것들은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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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치기 마드리드 근교 여행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톨레도를 이틀에 걸쳐 천천히 봤던 나도 세고비아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세고비아는 슥 돌아보면 금방 끝까지 다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역시나 스페인 특유의 박제된듯한 소도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고비아 역시 아주 특별한 장소가 될 것이다. 


 세고비아를 천상으로부터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로마 수도교는 단연 세고비아의 하이라이트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물 중 하나가 될 법하다. 또한 이 로마 수도교는 추가적인 접착제 없이 오로지 돌만 쌓아올려 만든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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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icharro 가 그린 Las tentaciones de Buda (1921) 출처는 태국 사이트: http://board.palungiit.com/ 

치차로는 이 그림('부처의 유혹')으로 1922년 스페인 국립전에서 수상했고 같은 해에 산 페르난도 왕립 예술원에 들어갔다지만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환상에 젖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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