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중략)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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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선배 한 분이 '기자의 글쓰기'에 대하여 이렇게 충고했다. 

 "기자는 시장을 대하는 태도와 시청 수위를 대하는 태도가 같아야 한다. 기사문은 짧고, 쉽고, 정확해야 한다."

 여기에 나는 하나를 덧붙인다. 

 "글은 잘 쓰기보다는 많이 빨리 써야 한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홈런을 치려면 스윙을 많이 해야 하는 것과 같다." 


글이 흐르다가 지류로 빠지기도 하지만 항상 본류로 돌아와 주제를 강조하는 구조이다. 잘 써진 글은 잘 설계된 건축물같이 미적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 


'억울하다는 유언을 남긴 오 씨가 교수대의 밧줄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는 동안 집행 참여자들은 사형장 건물 바깥 느티나무 밑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했다. 

 서울구치소 보안과장이 참여 검사에게 물었다. 
 "영감님, 오판 아닙니까?" 

 검사는 교무계장에게 "억울하다고 죽는 사형수가 많습니까?" 하고 물었다. 

 계장은 "아니오, 나로선 처음입니다"고 했다. 

 보안과장이 "상담할 때도 그랬어?"하고 다시 물었다. 

 계장은 "그걸 모르셨어요? 오휘웅이는 안 죽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검사는 말없이 땅만 내려다보더라고 한다. 

이 순간엔 그 어떤 인간도 밧줄을 끊을 수 없다. 사형을 선고한 판사조차도. 제도가 구르면 멈출 수 없는 시간대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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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치 혀와 펜으로 서로 욕하고 싸우면서 신도들 열 명 중 아홉은 알아 듣지 못할 설교를 늘어놓는 게 그들이야. 신학자들은 스스로 복음에 감명한 후에 다른 이들도 자신들이 받은 감명을 함께 겪을 수 있게 이끌어줘야 하지. 하지만 그러기는 커녕 복음서들은 영감을 받은 자들에 의해 쓰인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담고 있다는 빈약한 주장이나 뒷받침하려고 끝없이 자료를 모아다 끼워맞추고 있어. 하지만 그것도 그들의 구멍 난 신앙을 때우려는 주먹구구식 응급 조치에 지나지 않아. 단 한 번도 경이로운 영감에 휩싸여본 적이 없는 그들이, 어떻게 영감을 받은 사도들이 복음서를 썼다는 걸 알 수 있지? 

 모르긴 해도 아마 그래서 영감이란 걸 받을 자격을 교회의 성직자들에게까지 넓히고, 종교 회의에서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의 권리를 귀속시켜버린 거겠지. 그들에게 감히 묻고 싶어. 대체 오십 명의 주교들 중에서 스물여섯 명은 영감을 받았고 나머지 스물네 명은 그렇지 않다는 걸 어떻게 판단할 수 있지? 그러면 마지 못해 그들은 이런 변명을 늘어놓겠지. 교회의 수장들은 성직을 받을 때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영감이 존재하며, 결코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다고 말이야. 그러니 성직자의 무오류성, 우월성, 영감에 비하면 그 어떤 종교적 신념이나 헌신, 신앙적인 시각은 하찮게 여겨지는 거야. 하지만 아무리 이런 변명을 널어놓아도 영락없이 첫 째 질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A가 영감을 받은 사실을 어떻게 B가 알 수 있을까? B가 A만큼, 혹은 A보다 영감을 더 받지 않았는데도 그걸 알 수 있을까? A가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자신이 영감을 받은 것을 아는 것보다 알기 어려운 문제일 텐데 말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자세히는 보지 못했어. 나는 가끔 이런 의문을 가졌어. 눈속임이 아닌 진짜 사랑이라는 증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서 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봤어. 누군가 사랑을 하는지 안하는지는 오직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물론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사랑을 믿는 한도 내에서만 다른 이의 사랑을 믿을 수 있겠지. 

 사랑의 성품이 이렇듯, 성령의 성품 또한 다르지 않을 거야. 성령이 임하는 사람들은 거센 바람도 하늘에서 들리는 쏴 하는 메시지로 들릴 테고, 혓바닥에 불이라도 붙은 듯 자기도 모르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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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문학동네, 2015)


나는 ‘하찮은 이야기 따위는 필요 없소 우리의 위대한 승리에 대해 쓰시오...’라는 추신이 덧붙여진 편지를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나에겐 바로 이 ‘하찮은 것’들이 중요하다. 이 하찮은 것들이야말로 삶의 온기이자 빛이므로 긴 머리 대신 뭉툭하게 잘려나간 짧은 앞머리, 뜨거운 죽냄비와 국그릇들이 돌아오지 않는 주인들을 기다리고 전투에 나갔다 무사히 돌아오는 사람은 백 명 중에 일곱 명 정도였다는 이야기, 혹은 전쟁터에 다녀온 후로는 줄줄이 걸린 붉은 살점의 고기를 볼 수가 없어서 시장에도 못 다니고, 심지어 붉은색이라면 사라사 천도 쳐다볼 수 없었다는 사연들 (32쪽)


- 그런데도 당신은 전쟁의 추악한 면만 보여주고 있소. 냄새나는 속옷만 보여줬단 말이오. 우리의 승리가 당신한테는 무섭고 끔찍한 것에 불과한 거요?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 진실들

- 당신은 삶 속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거리에 있다고 말이오. 당신이 말하는 진실은 천박해요. 지나치게 세속적이오. 아니, 진실은 우리가 꿈꾸는 바로 그것이오. 우리가 되고자 하는 바로 그것! (출판 검열관과 나눈 대화에서, 48쪽)


전쟁터에서는, 말하자면,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이어야 해. 그래야만 하지 ...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말이야. 만약 사람답게만 굴잖아? 그러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 단번에 머리통이 날아가버리지! 전쟁터에서는 뭔가 하나 정도는 자신에 대한 기억을 붙잡을 필요가 있어. 그래, 뭔가 하나쯤은 ... 아직은 자신이 사람다울 때, 그 사람다웠던 모습 중 하나는 기억해둬야 해. (127쪽)


친구 한 명이 있었소. 지금 내 기억으로는 꽤 예쁜 아가씨가 그 친구를 사랑했었소. 간호병이었죠. 하지만 친구는 그 아가씨하고 결혼하지 않았어요. 제대하자 다른 여자, 더 예쁜 아가씨를 만나 결혼했지. 하지만 그 친구, 자기 아내랑 행복하지 못해요. 이제야 그 아가씨, 전쟁 때 연인을 떠올리고는 한다오. 서로 좋은 친구가 됐을 텐데. 전선에서 돌아오자 친구는 아가씨를 버렸소. 4년 동안 닳아빠진 군화에 남자 솜옷을 입고 다닌 그 아가씨가 지겨웠던 거요. 우리는 전쟁을 잊으려고 애썼소. 그리고 그때 사랑했던 여인들도 함께 잊은 거요. (170쪽)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 불신에, 보통의 삶을 소위 이상이라는 것과 슬쩍 바꿔치기하려는 이 욕망에 나는 매번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온기를 차디찬 광채와 맞바꾸려는 욕망에. (188쪽)


뭔가 여자다운 일이 하고 싶었어. 우린 늘 여자들만의 일에 목이 말랐지. 정말 사무치도록 여자다운 일이 하고 싶었어. 그래서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바늘을 손에 쥐고 뭐든 만들었어. (196쪽)


녹음기는 사람의 말을 녹음하고 어조도 그대로 담아낸다. 짧은 침묵, 울음소리, 망연자실해하는 소리까지도. 나는 이야기란 게 원래 시간이 지나 글로 옮겨질 때보다 말로 뱉어질 때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말할 때 그 사람의 눈빛과 팔의 움직임을 ‘녹음하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깝다. 대화하는 동안 드러나는 그들의 삶, 즉 그들 본래의 삶과 그들 각자의 삶을, 그들의 ‘텍스트들’을 녹음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196쪽)


우린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지만 ... 전쟁이 우리를 쫓아와 우리와 나란히 가고 있어요 ... 우리 딸내미들 중에는 불행하게 사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건 전쟁터에 나가 싸운 엄마들이 자신이 살았던 전선의 방식으로 딸들을 키웠기 때문이오. 아빠들도 마찬가지고. 전선의 윤리로 말이오. (199쪽)


‘당신이 온 거야? 당신이야?’ 나는 그 사람 손을 잡고 몸을 굽혔어 ... ‘당신이 올 줄 알았어 ...’ 그 사람이 뭔가 더 속삭였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더라고. (중략) 그 사람 위로 몸을 굽히고 입을 맞췄어. 그 사람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지. 눈물이 붕대를 타고 흘러내렸어. 그리고 그것으로 끝. 그 사람은 숨을 거뒀어. (241쪽)


‘어떻게 사람이 돼가지고 말들이 보는 데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싶었지. 동물이 있는 데서. 말들이 다 보았을 텐데...’(248쪽)


- 지휘관이 막사로 들어왔어.

- ‘남자 머리’처럼 이발해.

- 하지만 아가씨인데요.

- 아니지. 아가씨가 아니라 군인이지. 아가씨는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하면 돼. (304쪽)


마지막까지 나를 두렵게 한 건 딱 하나였어. 흉측한 꼴로 죽어 누워 있는 것. 그건 여자이기에 갖는 공포였지 ... 제발 포탄에 맞아 갈가리 찢기는 일만 없기를 바랐어 ... 그게 어떤 건지 나는 알거든 ... 내가 그 시신들을 수습했으니까. (348쪽)


그 아이들은 왜 집이 아닌 거리에서 입을 맞췄을까? 왜? 그런 식으로 죽고 싶었던 걸까 ... 아이들은 언젠가 게토에서 죽을 운명이란 걸 알았던 거야. 그래서 다른 식으로 죽고 싶었던 거고. 그건 사랑이었어.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 다른 이유는 있을 수 없어 ... 사랑밖엔.

당신에게 이야기하다보니 그 일이 아름답게 들리기도 하네. 하지만 실제로는? 실제로는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지 ... 그래 ... 아니면 뭐? 지금 생각해보면 ... 그 아이들은 맞서 싸웠던 거야 ... 아름답게 죽고 싶었던 거지. 나는 그게 그 아이들의 선택이었다고 확신해 (368쪽)


나는 벌을 받은 거야 ... 무슨 죄냐고? 아마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 아닐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 나이가 들어서는 부쩍 더 그래 ...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아침에 일어나면 무릎을 꿇고 창밖을 바라봐. 그리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지 ... 내가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해 ... 남편에 대한 원망은 없어. 오래전에 용서했거든. 딸아이를 낳고 누워 있는데 ... 남편이 우리 모녀를 보더니 ... 잠깐 있다 가버렸어. ‘정상인 여자라면 과연 전쟁터에 나갈 수 있을까? 총쏘기를 배우고? 그래서 당신이 정상아를 낳을 수 없는 거다’라고 나를 비난하며 가버렸지. 나는 남편을 위해서도 기도해 ...

어쩌면 남편 말이 맞는지도 모르잖아? 그런 생각이 들어 ... 다 내 죄라고. 나는 조국을 세상 무엇보다 사랑했어. 정말 사랑했지. (431쪽)


마을에서 남편의 사망통지서를 받지 않은 여자가 없었어. 나만 ‘행방불명’ 통지서였지. 파란색 잉크로 행방불명이라고 쓰여 있더군. 처음 10년은 날마다 남편을 기다렸어. 사실 지금도 기다리지만.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어떻게 희망을 버려 (461쪽)


이게 다 역사를 위한 거지? 당신이 지금 이 대화를 녹음하는 거 ... 이 대화가 역사를 위한 거라면,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 ‘만약 여자로 살지 않았다면 전쟁터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라고. 나는 한번도 남자가 부러운 적이 없었어. (중략) 남자들은 성능 좋은 권총 앞에서 넋을 잃더라고. 나는 그게 정말 이해가 안 됐지. 나는 여자니까.

왜 혼자 남았냐고? 글쎄, 결혼할 남자들은 많았어. 충분했지 ... 하지만 지금은 보다시피 혼자야 ... 즐겁게 살려고 애를 쓰지. 내 친구들은 모두 젊은 애들이야. 나는 젊음이 좋거든. 나는 전쟁보다 늙는 게 더 무서워. 당신이 너무 늦게 왔어 ... 나는 요즘 전쟁이 아니라 늙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거든 ...

지금 녹음되고 있는 거지? 역사를 위해, 그렇지? (534쪽)


스탈린그라드전투는 정말 무시무시한 전투였어. 그렇게 끔찍하고 처참한 전투가 또 있을까. ‘심장 하나는 증오를 위해 있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위해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사람은 심장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나는 늘 어떻게 하면 내 심장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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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몇 가지 잘못된 생각은 통합과 분열이 동일한 과정의 일부임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118쪽)


기존의 갈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갈등을 촉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러 갈등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바꿔 말해, 갈등 또한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119쪽) 왜 어떤 운동은 성공하고 다른 운동은 실패하는가? 왜 어떤 이념은 널리 유포되어 받아들여지는 반면, 다른 이념들은 그렇게 되지 못하는가? 왜 어떤 갈등은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는 반면, 다른 갈등은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는가? (132쪽) 


적어도 정당이 이익집단의 포로인 그 정도만큼 이익집단은 정당의 포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익집단은 갈등하고 있는 두 정당 모두와 쉽게 협상을 벌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기업집단이 공화당 후보만을 지지한다면 공화당이 그 이익집단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107쪽) 기업집단이 공화당 의원들로 하여금 기업 측 법안에 투표하도록 강요한다는 생각은 미국 정치에서 공화당이 취하고 있는 전반적인 입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92쪽) 


갈등의 언저리에 있는 구경꾼들 가운데 B보다 A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백 배나 많다면, 결국 무슨 일이 벌어질까. A는 갈등을 확대하고자 하는 동기를 강하게 갖지만, B는 갈등을 사적인 문제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갈등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싸움에 구경꾼을 끌어들이거나 배제하는 데 성공하느냐에 따라 승자가 되기도 하고 패자가 되기도 한다.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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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저자
우에노 치즈코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2-05-0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당신은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 세계적 권위의 사회학자 우에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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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머니의 딸에 대한 기대는 아들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양의성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는 딸에게 '아들로서 성공하라'와 '딸(=여자)로서 성공하라'를 동시에 보낸다. 두 메시지 모두 '제발 나처럼은 되지 말아 달라'는 자기 희생의 메시지이지만 그 속에는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너야'라는 질책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이렇게 양의적 메시지를 받은 딸은 가랑이가 찢어질 상황에 처하게 된다. (153쪽) 


성차별을 고발하는 페미니즘은 근대의 직접적 효과에 의해 탄생한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학의 개척자였던 고 고마샤쿠 기미는 "'구별'이 '차별'로 승격되었다"고 이 변화를 환영했던 것이며 그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은 끈질기게 '차별'을 '구별'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이다. (155쪽) 


어머니가 '어머니됨'으로부터 내려왔을 때 딸은 비로소 '딸됨'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174쪽) 


아버지가 '만든' 존재인 딸이 아버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자기 충족적 예언은 피그말리온 소설의 정석 그대로인데, '만들어진 이'가 '만든 이'를 스스로 원해서 사랑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궁극의 자기애이기 때문이다, 라는 구조의 복잡한 장치가 들어가 있다. (187쪽) 


사춘기에 아버지로부터 성적 어프로치를 받아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딸들의 아버지가 가진 직업으로 특히 공무원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공무원이란 권위적이고 억압적이면서 동시에 소심하며 위선적이기도 한 직업 중 하나이며 그들이 딸에게 성적 어프로치를 시도하는 것은 딸 이외에 성적 어프로치를 할 상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193쪽) 


그리고 39세. 마치 '여자의 유통기한'이 다하는 순간을 노렸다는 듯, 그녀는 살해당한다. 살해당하지 않았더라도 그녀의 삶 자체가 '완만한 자살'이었음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시체가 발견된 마루야마의 초라한 아파트는 OL의 성지가 되었고, 그곳에는 꽃을 바치는 행렬이 몇 년동안이나 이어졌다. (223쪽) 


많은 사람들이 매춘 가격은 매춘부에게 매겨지는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춘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매춘이다. 남자가 지불하는 돈은 남자가 자기 자신의 매춘에 대하여 매긴 가격이기도 하다. A씨에게 5천 엔을 지불한 남자는 A씨의 성의 가격을 5천 엔이라 여겼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성욕에 5천 엔이라고 하는 가격을 매긴 것이 된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성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남성의 추한 성욕'에 대하여 A씨는 5천 엔이라고 하는 가격을 매긴 것이다. 거기에는 성욕의 충족을 여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남자들에 대한 비웃음이 존재한다. (236쪽)


상상력은 단속할 수 없다. 폭력적인 포르노를 법적으로 단속할 것을 욕하는 다수파 페미니스트들의 요구에 내가 동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페미니스트 법학자 캐서린 맥킨논은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이라는 유명한 공식을 주장하기도 했다. (중략) 포르노 규제가 연령 제한 표시나 액세스 제한 같은 수법으로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잔혹한 상상력이라 할지라도 표상의 생산 그 자체를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단속하지 않는 것이 좋다. 표상과 현실의 관계는 반영이나 투사와 같이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꿈과 같이 보상이나 보완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우리들은 상상력 속에서 줄기차게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현실 속에서 누구도 죽이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95쪽)


동성애자 남성은 '여성화된 남성'의 기호가 된다. 또한 동성애자 남성이 호모소셜한 집단에 섞여 있다는 것은 성적 욕망에 의해 대상화될 위험, 즉 '여성화'될 위험을 언제나 내포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남자가 '남성됨'으로부터 전락할 위험은 반드시 배제되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 집단 내에서 호모포비아는 엄격한 룰이 된다. 또한 세지윅이 지적하고 키스 빈센트 등이 강조하듯이, 남성에 대한 에로스적 욕망은 모든 남성에게 잠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배제는 더욱 철저하고 자기검열적인 것이 된다. (104쪽) 


'여자친구'가 모든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줄 역전 홈런의 히든카드라 생각하는 그의 사고는 완전히 도착하고 있다. 실제 인과관계는 '일을 그만두거나, 차를 도난당하거나, 야반도주하거나, 휴대전화 의존증에 걸리는 놈'한테 여자친구가 생길리 없다, 일 테니까. 

그런데 남자에게 있어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학력이 없어도, 직장이 없어도, 수입이 없어도, '여자 친구만 있으면' 왜 역전타를 날릴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인기'가 다른 모든 사회적 요인을 웃도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여자 친구만 있으면 '나는 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75쪽)


근대 남성문학에 있어서 여자란 남성의 내면이 성립하는 사적 공간이었다. 남성은 공적 세계로부터의 도피를 추구 여자라는 공간으로 향하게 되며 그곳에서 현실 속 여성과 조우하게 된다. 

성녀로 추앙되든 매춘부로 업신여겨지든 모두 한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남성이 아니면 여성, 여성이 아니면 남성인 중간항을 인정하지 않는 이 굳건한 성별이원제 아래에서 남성으로부터의 일탈은 여성화된 남성과 동의어가 된다. 


메이지 13년 9월 17일 밤. 센니치마에에서 연설을 행하다. 남녀동권론을 논했다. 기생 기쿠에를 불러 놀았다. 남녀동권을 논한 직후 그날 밤에 홍등가에서 창녀를 샀다는 증언이다. 때문에 우에키는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언행불일치하다는 비난을 받게 되는데 우에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의 행동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창녀는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동권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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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머지는 말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열심히 살지 않으면 뒤처지고 뒤처지면 끝장이라고 말이다. 난 언제나 그게 개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결국 그 말대로 살아왔다. 단지 뒤처지지 않는 데 인생을 바쳐온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거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동안 난 단지 삶을 지속하기 위해 애썼다. 이제 와서 이렇게 그 모든 노력을 별것 아니었다는 듯이 말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정말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일이 정말로 우스운 일이 되어버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일엔 대가가 있다. 아버지는 그 대가가 먼 훗날 느끼게 될 엄청난 성취감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어떤 성취감도 느껴본 적이 없다. 단지 분노뿐이었다. (김사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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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대한 의문과 증오에 사로잡혀 불면에 시달린 적이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배신의 경위를 추측했고 그에 상응하는 복수의 설계도를 그렸다. 밤이 깊어갈수록 설계도는 범죄에 가까운 수위로 치밀하게 완성되어갔다. 다행스러운 것은 낮이 수많은 밤들을 단절해준다는 사실이었다. (중략) 


어쩌면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다른 사정이 있었던 건지도 몰라. 뭐 그런 게 아니라 할지라도 네 입장에서 그럴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삶을 사는 거니까 너를 무턱대고 악인이나 비겁자로 몰지 말자. 그래도 우리가 알고 지냈던 시간은 행복했고, 함께 듣던 음악은 아름다웠으니 그것으로 된 거다. (중략) 


하지만 맹세컨대 너를 찾아간 것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하고 싶어서였다. 두려움을 버리고 널 용서해야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리석게도 세 번이나 냉대를 당한 뒤에야 네가 용서를 구할 사람도 아니고 하다못해 진실을 이야기해줄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혼자 너의 사죄를 기대하고, 두려워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고민했던 내 자신의 어리석음에 웃음이 났다. 너는 네 손톱 밑의 가시가 가장 아프고, 네가 가장 가엾으며, 네 행위는 언제나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네 속에서 확고한 진실이므로 나로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략)


그와 나 사이에는 자잘한 추억이 많았다. 그와 내가 함께 알고 지낸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말이다. 둘 다 여행을 좋아했기에 종종 여행도 함께 다녔다. 나는 그가 최소한의 인간된 도리와 그동안의 정 때문에라도 내게 사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이라는 말이 우습게 보인다는 건 알지만 대체할만한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의혹이 남았고 나는 억울했다. 우연히 며칠전 도서관에서 정소현의 작가노트를 봤을 때는 나는 울고 싶었다. 보편적이었다. 이런 종류의 감정은 아프고 시간은 지난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 지금 느끼는 감정의 희석되고 잊혀질 거라는 사실마저 억울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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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에게는 안 오지? 너한테는 잘 해줄 수가 없을 것 같아, 가까이할 수 없는 인간들끼리 가까이하는 일도 큰 죄야 (서늘한 점심상,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 시인선 118)

저자
허수경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1992-04-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번 시집에서 그는 독특한 가락으로, 누추하고 쓸쓸한 마음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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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 있었다. '우연이 만든 서가'라는 책을 다루는 칼럼이었다. 말이 책이지 사실 책 속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인 구절을 뽑아 그것으로 글을 전개하는 칼럼이었다. 


책은 일종의 문장의 다발로 이뤄진 도서관 같은 -그러니까 나는 개별 책이 문장들의 도서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곳인데 그 곳에서 어떤 문장이든 간에 나는 내가 처한 상황 혹은 가까운 과거에 생생히 기억나는 감정 속에서만 읽을(읽힐) 수 있다고 봤다. 그러니까 네가 그 문장을 발견한 것은 우연의 일부분이다. 그 우연이 운명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한다. 나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지난 1월에 옮겨뒀던 저 문장에서 새삼스러운 서늘함을 느낀다. 나는 저 문장과 오늘 다시 우연히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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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저의 100시간

저자
기무라 히데아키 지음
출판사
후마니타스 | 2015-03-0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후쿠시마에서 원전이 폭발했다. 대지진 발생 이후 100시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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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회사, 정치인, 관료, 학자, 노동조합, 그리고 언론 등 이른바 '철의 육각추'라고 할 만큼 굳건한 '원자력 마을'[국내에는 '원전 마피아'로 통용되기도 한다]의 주민들은 '사고는 없다'고 적힌 화려한 비단 깃발을 국민들 앞에 흔들며 안전 신화에 권위를 부여해 왔다. 하지만 '3.11'이라는 현실 앞에 기는 처참히 꺾였다. 깃발은 비단이 아니라 거적 조각에 불과했다. 

이번 원전 사고는 국가권력에 교묘하게 들러붙은 원전에 기대어 살아온 무리들의 정체와 원전 시스템의 불완전함을 낱낱이 드러냈다. 우리 모두가 그 사실을 목도했다. 원전은 하나의 권력이었다. (12쪽)


인간의 행위를 고찰하지 않고 기술 자체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이 책에서 다룬 '1백 시간' 동안 사람들과 조직들이 어땠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문제점 또한 부각될 것이다. '미나마타병 의사'로 알려진 하라다 마사즈미는 생전에 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분노를 구실로 펜을 들어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 분노를 세상에 알리고 오래 남기는 것은 냉철한 펜이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이지만, 나는 해보려 한다. 

이 책은 한 저널리스트가 터벅터벅 발로 이루어 낸 사고 조사 검증 보고서다. 논평과 추측은 배제했다. 나는 오로지 팩트로 말하겠다. (13쪽)


보안원 홍보과장인 요시자와 마사타카는 나중에 이렇게 밝혔다. 

노심용융에 관해서도, 선량 등을 가지고 노심용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보완]원 내에서 공유한 다음 발표하는데, 관저에서는 “관저 측과 공유한 다음에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습니다. 원내에서는 공유하고 있었는데, 관저와는 충분한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관저의 지적은 ‘공유’하자는 것이었는데, 어느 시점부턴가 내부적으로 다르데 받아들이더니, ‘승낙받으라.’는 식으로 흘러가더군요. 승낙과 공유는 관청의 대응 측면에서 차이가 큽니다. 전달뿐만 아니라 전달한 내용을 승낙한다는 회답을 받아야 발표할 수 있게 되니 말이죠. 나는 14일 낮부터 긴급대응센터 활동을 맡았는데, 그때는 관저의 승낙을 받아야 기자회견 내용을 발표할 수 있는 상태로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후지모토의 대답은 이랬다. 

“대형 고객부터 살펴야죠. 그런 부탁을 할 수는 없습니다.”

후쿠야마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그럼 개인 고객은 아무 상관없나!”

(중략) 

후지모토의 주장은 이랬다. “이제껏 정전 때문에 재택 요양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적이 없잖습니까? ······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정전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 어쩌다 몇시간씩 (정전이) 일어났어도, 사람한테 큰일 났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중략)

마침내 에다노가 분통을 터뜨렸다. “살인죄로 고발당하고 싶어?”

에다노는 극도로 흥분했다. 

“원전이 이 지경인데, 계획 정전 때문에 혹시라도 사망자가 나면 내가 도쿄전력을 살인죄로 고발할 거야! 이건 미필적 고의야! 절대 당장은 정전 못 해!” (182쪽) 


도쿄전력의 주장이 놀라운 것은 “어차피 필요할 것이므로 검토했으면 한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느긋한 대화는 14일 밤 이후 관저에서는 결코 나온 적이 없다. 게다가 ‘일시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지극히 순간적인 사안인 듯한 인상을 강조하고 있다. ‘일시적’이라 함은 1분? 10분? 한 시간? 그도 아니면 1백 시간, 1천 시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아닌가.

또한 도쿄전력은 ‘철수’보다 어감이 부드러운 ‘대피’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원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지극히 심각한 상황은 14일 밤부터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대체 ‘대피’와 ‘철수’는 어떻게 다른가? 숫자 문제뿐만 아니라 표현 문제에서도 논점을 돌리고 있다. (240쪽) 


가령 이 사고를 정부와 국회사고조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책임감에 입각해 검증해야 옳았다. 한 신문에 실린 사고조 관련 기사에는 “어디까지 진상 밝힐 수 있나?”라는 방관자적 제목이 떡하니 박혀 나오기도 했다. 애당초 정부와 국회사고조의 검증과 그 결과는 올바른 것일까? 사고조의 조사 결과에 우리가 권위를 부여할 필요는 전혀 없다. 뭔가 공적인 것에 의존해 기사의 신뢰성을 담보하려는 것이야말로 독자들이 ‘3.11’을 계기로 비판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275쪽) 


마침 여기에 딱 들어맞는 연재를 ‘아사히 신문’ 조간에서 시작했다. 제목은 ‘프로메테우스의 덫’이었다. ‘프로메테우스의 덫’은 르포 형식으로 장기간에 걸쳐 연재할 수 있는 귀중한 꼭지였다. 르포 형식을 통해 일반 기사에서는 생략되는 상세한 사실을 세심하게 발굴할 수 있고, 장기간에 걸쳐 연재함으로써 이른바 ‘특종 기사’와는 차원이 다른 박력을 독자에게 전할 수 있다. 르포는 기관총도 바주카포도 아니지만 ‘어때? 이래도?’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독자에게 호소할 수 있다. ‘르포의 힘’은 여기에 있다. 요즘 신문은 연재라고 해봐야 기껏 3회나 5회로 끝난다. 재밌겠다 싶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지금 시대가 기나긴 ‘르포 빙하기’라고 여겨 온 나는 ‘프로메테우스의 덫’ 기획에 놀랐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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