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타당하다면 국내법이 적용하는 국토 어디든 경찰은 공권력을 투입시킬 수 있다. 치외법권은 그저 국제법상 명문화된 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를 외국인이 아닌 자국민에게 적용할 수 없으며, 학교나 종교 시설에 적용할 수는 또한 더더욱 없다. 종교 시설에 공권력이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을 두고 종교시설이 치외법권 지역이라는 주장은 비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치외법권’은 그저 비유적 표현에 불과하다.


경찰이 유독 종교 시설에 진입을 꺼린 이유는 법적으로 종교 시설이 치외법권 지역이라서가 아니다. 경찰은 종교 시설에 진입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첫째로, 과거 독재 정권 때에도 공권력을 차마 행사하지 못했던 종교 시설에 투입돼 비판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둘째로, 한상균 씨는 강도나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닌 정치범이기 때문이다.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숨어들었다면 경찰은 조계사 진입을 겁낼 필요가 없다. 당위성도 충분하고 국민들도 이해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껏 관행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판단에 따른 경찰 내부의 선택이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관행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경찰의 선택을 이용해 조계사에 숨어들었지만, 그가 경찰의 망설임을 이용한 것이 곧 죄가 되지는 않는다. 


종교시설이 치외법권 지역이 아니라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법대로 하자’는 법리주의를 그 주장의 근거에 두고 있다. 법에 따라 필요하다면 어느 지역이든 동등하게 통치돼야 한다. 삼한에는 소도가 있었지만, 현재의 국가 권력은 절대적으로 종교의 우위에 선다. 관행이 아닌 법대로 하자면 경찰이 종교시설에 투입될 수 없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으므로 법을 그대로 집행하면 될 일이다. 올해 3월, 16년 만에 대학에 경찰을 투입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분명 합법적인 일이다. 하지만 과연 그 ‘법대로 하자’는 주장이 쌍방에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는지는 다시 따져봐야 알 일이다. 경찰이 주장한 한상균의 체포 죄목은 도로교통방해죄였다. 누군가를 해칠 의도가 없는 한 씨를 잡고자 조계사를 뒤덮을 정도의 경찰이 필요한 건 비효율적인 일이다. 이는 공권력의 남용이다. 경찰을 오로지 민주노총에 압박을 주겠다는 정치적 의도에서 이용하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경찰은 헌법상 명문화 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오로지 ‘폭력적으로 변할 우려가 있다’는 예측만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번 조계사 치외법권 논란이 발단이 된 민중총궐기 시위는 경찰이 이처럼 온갖 불법을 자행하면서 무리하게 진압을 한 현장이 됐다. 


종교시설은 치외법권인가, 는 주장은 그러므로 수정돼야 마땅하다. ‘법대로 하자’는 주장은 과연 동등하게 적용되고 있는가, 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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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념이 세상에 등장하는 데에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널리 퍼지고 있는 ‘헬조선’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이 마치 지옥과 같다는 의미의 헬조선은 ‘국가’를 향한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의 자조와 소외를 함축한다.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과 개인 간의 간격은 점차 멀어지고, 경제적으로 부유층으로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서 힘이 없는 개인들은 뭔가 해볼 도리 없이 ‘어쩌지를 못해’ 무기력하게 자조하고, 국가로부터 소외당한다. 이는 민주정 이후 가장 권위주의적인 박근혜 정부가 등장하면서 더욱 심화됐다.


‘죽창’과 ‘금수저’는 개인이 그저 자조 밖에 할 수 없는 헬조선 담론의 부산물이다. 공평하게 너도 나도 한 방 씩만 맞으면 죽을 수 있다는 의미의 ‘죽창’은 경고다. 여기서의 죽음은 팍팍한 현실과 대비된다. 현실에서는 비록 불공평했을지라도 죽음만은 공평하다는 뜻이다. ‘금수저’ 역시 신분이나 계급이 없는 현대 사회가 부모의 지위 여하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다는 자조다. 국가는 이들의 자조를 그대로 방관하거나 ‘경제 민주화’ 등을 저버린 채 지배 계층의 세습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잡아 이들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다.


점차 자본의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에서 이들이 정서적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효능감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소외를 당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소설가 장강명은 자신의 책 <한국이 싫어서>에서 제대로 포착해낸다.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줄 구성원을 아꼈지. 삼성전자나 김연아 같은’이라는 말은 젊은이들의 소외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패한 국민을 국가는 탄압하거나 방치한다. 가난한 국민을 위한 복지 예산을 축소하고, 국가를 위해 싸우다 다친 장병의 치료비 지출에 인색하다.


자조와 소외가 엉킨 자리에 젊은이들은 이제 국가를 불신하기 시작한다. 헬조선 담론이 유효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조와 소외를 넘어 젊은 세대는 잘못된 사회가 비단 사회 개별 구성원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에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더는 개인의 노력을 기울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직시하는 일. 헬조선은 그간 개별 구성원을 강력한 국가주의 아래 통치해오던 나라가 자신의 가장 강력한 통치 수단을 빼앗기는 연장선에 있다. 검·인정 교과서를 사용해 자국에 부정적인 인식과 사관을 갖게 됐다는 말은 국가주의로부터 탈피하려는 구성원을 바라보는 초조함인 셈이다.


새마을 운동부터 청년 희망 펀드까지, 이는 모두 개별 구성원을 국가라는 이름 아래 호명한 일종의 ‘국가적 동원’이다. 그동안 국가는 곧잘 ‘국가가 잘 살아야 내가 잘 산다’라는 대의명분 아래 구성원을 일괄적으로 통치하고자 했다. 국가의 부품으로 자조하고 소외당한 약자들은 헬조선을 호출했다. 헬조선 담론은 뿌리 깊은 국가주의를 탈피하고자 하는 개별 구성원의 각성이자 노력이다. 그런 점에서 헬조선 담론은 충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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